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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도깨비-3화]마법을 일으키고 있는 도깨비



연말엔 도깨비가 한동안 열풍이 불 듯하다. 올해 초 태양의 후예로 인기를 끈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 연말에도 또 나올 수 있다니. 사실 연달아서 나온 작품에 대해 혹여나 준비가 부족해서 퀄리티가 떨어질지는 않을까하는 기우는 정말 기우였다. tvN에서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드라마의 평가지표는 이미 넘어섰으며 인물들의 관계를 예측하는 궁예라 불리는 내용의 글들도 많다. 애초에 리뷰를 쓰는 것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등장한 소재에 대한 가까운 내용을 예측은 해 볼 수는 있으나 너무 먼 내용을 미리 짐작해보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한다.

 

지난 화에서 역대급 엔딩이라는 평을 받은 도깨비와 저승사자의 도로 위의 런웨이가 시작을 장식한다. 영화에서나 볼 듯한 CG는 시작부터 강력한 임팩트를 준다. 도깨비는 검으로 차를 반으로 갈라 지은탁을 구하고 납치범들을 응징한다. 저승사자는 최면을 걸 듯 이들의 미래를 되뇌이게 하여 미래를 결정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한편, 지은탁을 구한 뒤 도깨비는 지은탁이 납치당한 이유를 알아보던 중 이모가 돈 때문에 그런 일을 벌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이모에게 벌을 주겠다는 도깨비는 이모네 집 은탁의 서랍에 금덩이리를 2개 놓는다. 유덕화가 묻는 것처럼 저게 무슨 벌인가하는 마음이 들게 하지만 이를 딸이 가지고 도망가게 되어 은탁에 대한 집착은 사라지고 가족 내의 분란이 생기게 한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극중 도깨비가 놓은 금괴는 1kg5천만원 상당의 금액으로 1억원 조금 넘는다.

 

그리고 도깨비는 자신이 지키던 왕의 환생을 궁금해하며 티비를 본다. 지금까지 사람들의 예상으로 저승사자가 왕의 환생이며 써니가 왕비의 환생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저승사자가 제시한 환생이 꼭 같은 성별로 되냐는 의문은 사람들이 예측하는 데에 혼란을 주고 재미를 더 해주는 요소로 작용했다.

 


이번 화에서 삼신할매는 다리에서 야채가 아닌 악세서리를 판매한다. 지나가는 저승사자에게 물건을 사라며 말을 건 삼신할매는 머리핀을 추천하며 거울로 저승사자의 얼굴을 비추고 저승사자는 물건들 중에 옥반지에 관심을 보인다. 옥반지를 집으려는 순간 써니가 이를 낚아채고 둘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된다. 써니의 얼굴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난 저승사자는 당황하고 써니는 그런 저승사자를 보고 당황하지만 마음에 들어 전화번호를 주면 반지를 주겠다고 한다. 값을 누가 치르겠냐고 삼신할매는 묻지만 둘은 서로 바라보기만 한다. 그러면서 삼신할매는 누가 내든지 아주 비싼 값을 치르게 될 것이라며 둘의 가볍고 밝지만은 미래를 암시한다.

 

도깨비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짜증을 일으키는 캐릭터가 두 명 있다. 지은탁의 주변인물로 이모, 담임선생님이 그 둘이다. 이모는 은탁의 어머니가 남긴 보험금을 노리고 은탁을 맡고 있지만 따뜻한 가족보다는 부려먹는 존재이며 험한 말을 해도 상관없는 존재로 생각한다. 이모의 자식도 은탁에게 같은 대우를 하면서 은탁에게 이모네 집은 지옥과 다름없다는 느낌을 자아낸다. 그런 은탁의 삶에서 비슷한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는 담임선생님이 힘들게 한다. 돈이 없는 학생이라는 이유로 좋지 않은 태도로 은탁을 대하는 담임선생님은 이모만큼이나 짜증을 유발한다.

 


그렇게 짜증나는 상황을 많이 겪은 지은탁은 풀이 죽을 수 있지만 여느 드라마 여주인공처럼 캔디 같은 자세를 잃지 않는다. 불행에 대한 은탁의 마음은 불행이 감기 같다는 대사로 잘 전달된다.

불행해서요.

이젠 그냥 감기 같아요.

내 불행들이요.

잊을 만하면 찾아오고 때 되면 걸리거든요.



 

마지막으로 멀리 떠난다는 도깨비를 잡기 위해 지은탁은 도깨비의 집으로 찾아온다. 도깨비 신부임을 입증하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 지은탁에게 도깨비는 그럴 일 없을 것이냐며 돌아가라고 하지만 지은탁은 그에게 도깨비의 검을 볼 수 있다고 검밍아웃한다.

 

이번 화에서 생각해 볼 부분으로 인간에게 4번의 생이 있다는 부분이 있었다.

씨 뿌리는 생, 뿌린 씨에 물을 주는 생, 물준 씨를 수확하는 생, 수확한 것들을 쓰는 생.

사자가 망자에게 전해주는 말이라는 이 말에서 우리나라의 죽음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을 느낄 수 있고 우리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볼만한 계기를 주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