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간이 너무 빨리 가지 않아?」
친구가 말했다. 마치 시간의 단위가 바뀐 것 같다고. 하루하루 살아가던 것이 한주한주 넘어가다보면 어느 새 달력 한 장을 넘기게 된다고.
「우리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걸까?」
친구가 던진 말은 가벼운 대화를 시작하기 충분했다. 가볍게 던져진 화두에 화답할 말을 찾다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친구의 말에 쉽사리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단순히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 간다고 답하기엔 뭔가 아쉬운 구석이 있었다.
「그럴 수 있지. 우리가 시간이 흘렀다는 생각을 전보다 자주 안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생각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 하는 게 아닐까.」
최근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상황들을 자주 맞닥뜨렸는데 어느 새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을 나이가 먹어 생긴 당연한 결과로 생각하는 나였다. 친구와의 대화는 이에 대해 깊어지려다 서로 다른 일정으로 길이 갈려 흐지부지 끝이 났다.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친구와의 대화를 곱씹어봤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 이 말은 참 많이도 들어왔다. 학생시절 수많은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젊음을 부러워하며 자신의 시간이 빠르게 감을 한탄했다. 선생님의 그런 의도를 이해할리 없던 학생의 나는 단순히 빨리 성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선생님의 한숨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그 많은 한숨 중 유독 뚜렷이 느껴진 한숨이 있었다.
「쌔끼들아. 니네는 지금 시간이 빨리 가는 거 같제? 나이 먹으면 더 빨리 가. 10대 때가 시속 10km면 20대는 20km고 30대는 30km야.」
다소 날카로운 목소리에 거친 사투리를 구사하던 중학교 기술 선생님의 말이었다. 문득 기술 선생님의 말 중에서 나이가 먹을수록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거친 사투리의 사내가 큰 의미 없는 농담으로 뱉던 푸념이라 생각했던 말의 일부분을 이해하고 어느새 그처럼 시간의 흐름에 대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나의 투덜거림에서 과거 선생님들의 푸념이 느껴지자 묘한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나는 기성세대가 하는 말 중에는 상당부분 은연중에 어린 세대에게 자신의 어른스러움을 나타내려한다고 생각했다. 군대를 다녀온 군필자가 아직 다녀오지 않은 미필자에게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경험해보지 못한 자에게 경험을 뻥튀기처럼 부풀려 말하는 것과 같이. 그들이 하던 푸념을 똑같이 하는 나를 보며 나는 그들과 다른 점을 찾아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들과 다를 게 없었다. 머릿속으로 생각을 계속 해봤지만 차이점을 찾기보단 억지를 쓸 수밖에 없었다. 억지를 쓰는 모습은 내가 생각하던 기성세대에 가장 보기 싫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생각을 바꾸어보았다. 그들과 내가 다르지 않다고. 그러자 뭔가 명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이 이런 푸념을 하게 된 이유를 생각하면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 또한 알 수 있으리라. 곰곰이 과거의 선생님을 불러들였다. 당구대로 걸상을 탁탁 치며 학생들을 쌔끼라고 부르던 그의 마지막 말에는 늘 부럽다는 말이 있었다. 그는 우리들의 젊음이 부럽다고 했다. 파릇파릇한 신체적 젊음 뿐 아니라 이것저것 시도해볼 수 있는 젊음이 부럽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가 부러웠던 가장 큰 것은 자유로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책임이 느껴지지 않던 시간. 보호자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던 시간. 보호받는 것이 당연했던 시간. 이미 자기는 모두 써버린 시간.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친구의 대화가 다시 떠올랐다. 친구가 미쳐 끝내지 못한 대화의 끝에는 우리의 자유로운 시간이 모두 소비되기 전에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것은 아니었을까. 시간이 더 아쉬워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최근 본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에서 소개된 시가 떠올랐다.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오늘 하늘은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어제는 이미 당신의 것이 아니니
지금 하십시오.
친절한 말 한마디가 생각나거든
지금 말하십시오.
내일은 당신의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곁에 있지는 않습니다.
사랑의 말이 있다면 지금 하십시오.
미소를 짓고 싶다면 지금 웃어 주십시오.
당신의 친구가 떠나기 전에
장미가 피고 가슴이 설렐 때
지금 당신의 미소를 주십시오.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십시오.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엔 너무나 늦습니다.
당신의 노래를 지금 부르십시오.
- 찰스 스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