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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인간]사랑의 상처받은 이들의 세상 이야기


실내인간. 흥미로운 이름이다. 실내에만 있는 사람을 말하는 걸까?

최근 흥미롭게 읽고 있는 이석원 작가의 소설이다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이름의 가수이기도 한 그의 필력이 좋아서인지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서 공감을 느껴서 인지 그의 책에는 자꾸 손이 간다


처음 그의 책을 손에 집은 건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었다

당시 그 책을 들었을 때는 누구보다도 좋은 말을 듣고 싶은 상태였다

생각한 방향의 책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지난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감정적인 치료를 가져다주었다

그의 책은 늘 그렇다. 소재를 가늠할 수 없던 부분에서 훅 들어온다. 실내인간도 역시 그랬다.


실내인간은 용우, 용휘, 제롬 세 명의 남자 이야기이다

사실 극의 주인공인(작가가 투영된 듯 한) 용우와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신분을 숨기고 사는 용휘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용우는 이별의 상처로(본인이 선언했음에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살고 있던 보증금을 까먹다가 한계에 다르자 다른 곳으로 이사한다

턱없이 높은 집값으로 갈 곳을 못정하던 용우는 

주변과는 비교하기 힘든 가격을 가진 집을 찾게 되고 옥상에 올라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그 집에 들어간다.

외국에 있던 친구 제롬을 불러 같이 살게 되고 집 주변 빵집에서 용휘를 만나게 된다

나이 차이는 꽤 났지만 꾸준히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 흥미를 느낀 그들은 

어느 새 함께 시간을 자주 갖게 되고 정기적인 술자리를 용우와 제롬의 집에서 열게 된다

비밀이 많은 것 같은 용휘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부러운 인생을 산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본인의 집에는 한번도 초대하지 않는 것이 용우와 제롬은 불만을 가지지만 

그때마다 용휘가 가져오는 값비싼 술로 금새 잊어버린다

그들은 술을 먹으며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떠들어댄다

그중에서도 이야기는 늘 연애로 흘러가게 되고 용우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용휘에게 하고 용휘는 그런 용우에게 조언한다.


"사람이 누굴 좋아하고 헤어지는 데 이유라는 게 그렇게 부질없는 거더라고. 그러니 누굴 어떻게 만나든 아, 우린 그냥 만날 수밖에 없어서 만났구나, 그러다 헤어져도 아, 헤어질 수밖에 없어서 헤어질 수밖에 없었구나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거야, 이유 같은 거 백날 고민해봤자 백날 고민해봤자 헤어졌다는 건 달라지지 않으니까."


이는 용휘가 과거 중학교 때 사귀었던 여자친구랑 헤어진 경험담을 통해 용우에게 말한 대화이다

고등학교를 들어가자마자 헤어진 용휘는 어른이 되어서까지 왜 자기가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동창회에서 그녀를 마주쳐 꼭 확인하고 싶어 물어봤더니 그녀의 대답이 용휘보다 못한 고등학교에 간 자신에게 

자격지심이 생겨서 헤어졌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며 헤어지는 이유가 거창하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사랑을 설명하려고 한다. 가장 많은 이유로는 주변사람에게 설명하려고

왜 상대방을 사랑했는지, 언제부터 사랑했는지도 잘 모르면서

평범한 이유를 들어 그를 사랑하게 된 이유를 찾는거다

하지만 사실 간단하다. 용휘의 말대로 만날 수 밖에 없어서 만난 것이고 헤어질 수 밖에 없어서 헤어지게 된 것이다

내가 뭘 해서, 내가 뭘 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저 만났어야할 운명이었고 헤어져야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이유를 생각한다고 해서 바뀔 것은 없으며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그렇게 꾸준한 모임을 갖던 중에 생활의 변화가 일어난다

용휘를 찾아오는 기자라고 하는 사람이 그가 베스트셀러의 작가 방세옥이라며 그에 대한 온갖 흉흉한 소리를 내놓는다

용휘에 대해 알지 못한 부분을 기자가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용우는 용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다

그러면서 용휘와 나눴던 대화 중 그가 말했던 말이 계속 떠오른다.


믿어. 믿으면 아무도 널 어쩌지 못해.”


용우가 진정으로 용휘를 믿고 있었다면 기자의 말에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용우는 용휘를 믿은 것은 조건이 걸려 있는 상태를 믿은 것이지 용휘라는 사람을 믿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어려운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볼 수 도 있을 것이다.



그 후, 용휘는 용우에게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에 대해 말해준다

서점에서 만난 유복한 집안의 딸이었던 그녀에게 용휘는 책도 잘 읽지 못하던 자신을 작가라고 속이고 

우연을 빙자한 운명을 통해 그녀에게 자신을 던진다

운이 좋게도 우연을 빙자한 운명은 그녀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지만 

이는 처음의 거짓말로 인해 점점 커져 어쩔 수 없이 헤어졌다는 용휘의 말로 마무리 되는 듯 했다.


사랑 이야기를 하며 용휘는 용우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에게 어느 날 절대로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생긴다면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갖겠는가.”


이 말에 용우도 답을 할 수 없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그것을 가질 수 있을까? 가진 것도 별로 없는 내가

남들에 비해 가진 것도 변변치 않고 할 수 있는 것도 얼마 없는 내가.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은 뒤로 가면서 나를 더 부끄럽게 만들었다

용휘가 표면적으로 더 나은 존재인 작가로의 성공을 이루기 위해 

사랑했던 이를 힘들게 하고 그녀를 힘들게 하여 헤어지게 된 후

다시 그녀를 찾기 위해 작가로 성공에 미친 듯이 몰입해 성공을 이뤄냈지만 그녀는 이미 결혼을 한 상태이다

그녀가 배우자로 선택한 사람은 그가 되고 싶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아닌 

그녀와 사랑했던 당시의 자신과 별다를 것이 없던 잘 팔리지 않는 시인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를 갖기 위해 가지려던 능력은 그녀를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격지심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었음을 자각하게 만든다.


사랑에 실패한 용휘는 용우에게 말한다.


잊지 못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누굴 좋아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될 수는 없다고.”


가끔 우리는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과거 연인 이야기가 나오면 얼굴이 붉어진다

다시 생각하기 싫은 안 좋은 기억이 있기도 하겠지만 아직도 잊지 못했음일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 일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그만큼 최선을 다했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말 사랑했던 사람하고는 영원히 못 헤어져.

누굴 만나든 그저 무덤 위에 또 무덤을 쌓는 것뿐이지.”


실내인간용휘를 말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공간에 병적으로 집착하여 비가 오지 않아도 머리가 날아갈까 우산을 쓰고 다니며 

자신의 공간은 철저하게 통제하려는 실내인간

사랑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한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이것뿐이지만 그것이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사랑을 흔히 이어달리기라고 표현한다

이전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은 다음 사람에게는 상처를 받지 않겠다고 

여겨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를 받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받아 계속 나를 찾아 가는 과정 또한 인생의 과정이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의 무덤을 가슴에 쌓으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사랑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