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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오르셰전]파리의 오르셰를 서울에서



작년 여름에 떠났던 로마, 바르셀로나, 파리로의 유럽 여행 중 파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오르셰 미술관에 갔었던 일이다. 파리하면 루브르 박물관이 유명하기 때문에 그곳에서 느끼는 바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이지만 오히려 루브르에 가기 전에 들른 오르셰 미술관이 나의 마음을 빼앗았다.(오르셰 미술관을 보고 가서 인지 루브르는 나에게 큰 임팩트는 주지 못했다. 루브르는 그냥 기념할 만한 물건을 많이 집대성해놓은 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미술에 크게 조예가 있는 나는 아니지만 그저 그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순식간에 가고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경험이었다. 사실 이는 내가 이후에 전시회나 박물관에 흥미를 느끼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좋은 경험이 더 좋은 경험을 낳아 주리라는 기대를 안고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오르셰 전에 다녀왔다.

 

그렇게 좋은 경험을 주었던 오르셰 미술관의 경험을 우리나라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예술의 전당에서 밀레의 이삭줍기를 중심으로 전시회를 연다는 내용이었는데 오르셰 미술관에서 봤던 작품 중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작가 중에 속한 그였기에 큰 노력없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사람은 많았다. 설명을 해주는 오디오 프로그램이 3000원의 대여료를 받았는데 파리에서도 그랬듯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여 작품과 아무런 매개체 없이 접촉하기로 마음먹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 선택을 살짝 후회한다.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전시회는 낭만주의, 현실주의와 같이 시대의 흐름과 그 시대를 주름잡은 그림풍에 대한 집합으로 구성되었다. 짧막한 설명을 보고 그림을 봤지만 솔직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미학에 대한 심도 있는 공부를 한 뒤 봤으면 더 좋은 풍미를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내가 생각했던 바를 하나씩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인상 깊었던 작품을 하나씩 살펴보려한다. 처음 마주한 그림 중 마음을 빼앗은 작품은 필로멜라와 프로크네였다. 그리스의 공주인 필로멜라와 프로크네에 대한 그림으로 사진보다 실제적인 입체감이 넘치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은 찍을 때, 대상에 대한 초점을 맞출 수 있다. 하지만 핵심 피사체에만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단점이 있는데 그림은 그리는 사람이 모든 피사체에 대해 초점을 그릴 때마다 맞출 수 있어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 그리고 오히려 집중하고자 하는 부분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묘사를 생략하여 집중도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필로멜라와 프로크네는 핵심 피사체인 두 여인의 눈에 대한 묘사를 실제처럼 하고 빛을 내게 하여 생동감을 높이는 반면 나머지는 흐리게 묘사를 해 살아있는 그림이라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그 다음으로 넘어가면 윌리엄 부그로의 포위가 전시되어있다. 여인을 둘러싼 큐피트의 아름다운 포위는 아기 큐피트의 장난스러움과 큐피트에게 둘러싸인 여인의 성숙함을 잘 보여준다.


루이 장모의 메젠티우스의 형벌은 산자와 죽은 자의 처벌을 한 모습의 묘사로 그 둘의 대비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시체를 산 사람과 묶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처벌은 형벌의 참혹함과 그 상징적인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자 해석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밀레의 이삭줍기였다. 현실에 관심을 두는 화풍으로의 변화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밀레의 작품은 해석에 있어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상향을 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가난한 이들의 생활에 포커스를 맞추는 화풍은 이들의 생활을 신화를 찍어내는 듯이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화풍은 쥘 브르통에 이삭을 줍고 돌아오는 여인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어찌보면 가장 신성한 모습으로 누군가에겐 창조주가 될 수 있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이들에게 신을 대입해보게 만들었다. 이들에게 신이라는 잣대를 대본다면 신의 모습 또한 이렇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장 프랑수아 밀레의 양치는 소녀와 양떼는 이러한 관점에서 또 나아가게 해주었고 하늘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과거 스페인의 순례자 길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가며 본 하늘이 생각났다. 한없이 맑고 높은 하늘에 구름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고 그런 하늘이 이 작품에 잘 표현되었다.

이러한 하늘에 대해 집중한 화가가 전시회에 잘 나타났다. 알프레드 시슬레는 하늘에 대한 중요성을 말했다. 그는 늘 하늘부터 그린다며 하늘의 다양함과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지막의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의 정오의 휴식으로 유명한 그림인 만큼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묶어두었다. 유화가 주는 입체감이나 빛에 의한 색의 변화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파리의 오르셰 미술관에 미치진 못했지만 국내에서 느낄 수 있는 해외 작품전 치고는 나쁘지 않은 전시회였다. 미학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게 만든 계기를 만들어준 전시회로 앞으로 미학에 대한 공부 내용을 포스팅 하려한다. 미학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와 그를 통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