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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가려진 시간]흥행여부에 가려진 이야기




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내일이 시험인 대학생에게도 하루는 24시간이며 갓 태어난 아기에게도 하루는 24시간이다. 멈추거나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가려진 시간>은 모두에게 멈춰버린 시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이 흐르는 소재를 담았다. 강동원의 로맨스 작품이라는 이야기로 입소문을 탔지만 상영관 동원력의 부족 등을 이유로 흥행에는 실패했다는 반응이 대중적으로 퍼져있다. 그럼에도 작품성과 다른 CF 스타들과 다르게 다작하는 강동원의 커리어에 남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열일한 강동원이 나온 <가려진 시간>은 영화 외적인 부분에 가려 흥행을 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외적인 부분이 부족했다는 이유에 가려 작품성 또한 가려진 것일까 생각해 볼만한 영화이다.

 

<가려진 시간>의 기본적 스토리는 화노도로 새아버지와 엄마랑 함께 온 수린과 고아로 보육원에서 살고 있는 성민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이다. 화노도로 이사를 와 새로운 학교로 전학온 수린은 주위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공상에 관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수린이는 학교 컴퓨터 시간에 자신의 블로그를 켠 채 자리를 비웠다가 친구들에게 이에 관한 사실을 들키고 시선은 더 불편해진다. 한편, 수린의 옆 반이었던 성민은 수린을 보자 첫 눈에 반하고 관심을 끌려 또래 소년들이 하는 방법으로 수린에게 다가간다. 처음엔 경계를 하는 수린이지만 자신의 관심사에 관심을 가지고 들어오는 성민에게 비밀 언어를 공유하며 마음을 연다. 둘만의 언어로 쓰는 서로에 대한 편지 같은 공책은 둘의 사이를 더욱 더 가깝게 만들어준다.

 


둘은 함께 놀며 숲에 있는 신비로운 집에 들어가게 된다. 꿈에서나 나올 장소에 함께 들어간 둘은 무서움 반 기대 반으로 집을 탐색하고 그곳에서 수린은 성민에게 입맞춘다. 노화도로 온 뒤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자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닫은 수린에게 처음 마음의 문을 연 성민은 수린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런 성민에게 입맞추며 자신에게서 도망가지말라는 수린의 말은 성민의 볼을 발그레하게 만들고 머리를 하얗게 만든다.

 

풋풋한 사랑 이야기가 계속되다가 사건이 벌어진다. 터널 공사를 하는 산 주변에서 이를 성민의 친구 태식과 재욱이 구경을 가려하다 수린이 이를 알게 된다. 결국 넷이 함께 구경을 가기로 하고 산으로 향한 곳에서 동굴을 발견한다. 호기심이 발동한 넷은 동굴에 들어가고 동굴에서 신비한 돌을 발견하고 밖으로 가져나온다. 동굴을 나오다 머리핀을 잃어버린 수린은 다시 찾기 위해 동굴로 들어가고 수린이 동굴을 들어간 틈에 나머지 셋은 돌의 안을 살펴보자며 돌을 바닥에 던진다. 돌이 깨지며 안에 있던 것 같은 투명한 물체의 움직임을 본 셋은 두려움에 머뭇거린다. 아무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두려움을 느낀 셋은 곧 세상의 시간이 멈춰버렸음을 알게 된다. 처음 시간이 멈췄을 땐 신기함과 흥미로움으로 가득한 셋이었지만 점점 상황의 무서움을 느끼고 섬을 나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던 중 천식을 앓던 재욱이 버티지 못하고 죽게 된다. 슬픔을 뒤로 한 채, 과거에 들었던 시간요괴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하며 성인이 되면 다시 시간이 제대로 흐를 것임을 희망으로 안고 성민과 태식은 살아간다. 시간이 충분히 흐르고 스무살이 넘을 시점에 태식은 점차 이 생활을 견딜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물에 몸을 던져 생을 마친다. 시간을 멈춘 뒤, 함께였던 둘을 잃게 되며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성민은 조금 더 견디다 희망을 점차 잃고 태식과 함께하려 태식에게로 몸을 던진다.

 


하지만 그 시점에 멈춰버린 시간이 풀려버리고 성민은 성인이 된 채로 수린에게 간다. 한편, 시간이 멈춘 시점 이후로 아이들은 실종되었으며 납치당했다는 이야기가 동네에 퍼진다. 혼자 살아남은 수린에게 관심과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고 수린은 힘든 시간을 보낸다. 숲에서 낯선 사람이 자신이 성민이라고 하며 다가오자 두려움을 느낀 수린은 도망가고 이 모습을 본 수린의 새아버지는 경찰을 부른다. 성민은 도망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수린과의 비밀언어로 적은 노트를 수린에게 주고 경찰을 따돌린다. 비밀언어로 된 이야기를 본 수린은 낯선 모습의 사람이 성민의 미래라는 것을 알게 되고 둘만의 비밀의 장소에서 재회한다.

 


수린은 돌아온 성민을 사람들이 인정하고 받아주길 바라며 사람들에게 성민이 다가가는 것을 돕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성민의 친한 친구는 죽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지어내지 말라며 수린을 나무라고 성민의 보육원 어머니는 말로는 이해한다고 하지만 성민에 대해 경계심을 풀지 않는다. 결국 아무도 믿어주지 않음을 깨달은 성민은 수린과 함께 둘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떠나자며 수린과 떠나려하지만 경찰이 이를 막는다. 사람들을 이해시킬 방법으로 그들 앞에서 성민에게 일어난 일을 보여주는 방법뿐이라며 수린은 다시 동굴을 찾아 신비로운 돌을 가져나온다. 그런 수린을 본 성민은 돌로 인한 불행을 겪는 것은 자신만으로 충분하다며 이를 빼앗는다. 그런 둘을 경찰이 둘러싸고 체포하려는 순간 형사와 수린은 절벽에서 떨어질 위기에 처한다. 절벽에서 떨어지기 직전 성민은 돌을 사용해 둘을 구하고 자취를 감춘다수린은 성민의 행동이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닫고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일을 더 시끄럽게 만들지 않기 위해 형사가 시키는 대로 한 수린은 교복을 입는 학생이 되고 화노도로 돌아오는 길에 한번 더 멈춰버린 시간을 겪은 성민을 재회한다.

 


영화의 주된 갈등은 멈춰버린 시간을 지내온 소년과 그 소년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타난다. 소년이 직접 말하지는 않지만 소년의 말을 듣고 믿는 수린이라는 소녀의 말을 공상에 빠져 온전한 정신상태를 갖지 못한 사람이 말하는 허언이라는 식으로 사람들은 대처한다.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상대방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 중간에 혹시나 모를 생각에 성민과 납치범으로 생각되는 자의 지문을 비교해보자는 경찰이 나타나지만 한가하냐며 의견을 묵살하고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공감이 갈 수도 있으면서 답답함을 자아낸다. 온갖 소문으로 안좋은 상황에 처하는 수린의 모습은 가여우면서도 다행인 점은 그녀가 느끼지 못한 만큼 많은 사랑을 받는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수린은 두 남자의 사랑을 받는다. 영화의 중심 이야기를 펼치는 성민과 그녀의 새아버지 도균이 그 두 남자다. 성민은 자신의 아버지가 고아원에 자신을 버리고 가며 한 말을 수린에게 한다. 너는 어디서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말을 자신의 장점으로 각인하고 있는 성민은 자신의 옆에만 있다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말을 수린에게 해준다. 수린은 성민의 살가운 태도에 마음을 열고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이 말은 나중에 성민을 힘들게 만든다. 성민은 멈춰버린 시간으로 함께 간 태식과 재욱이 죽고 자기만 살아남은 것으로 함께 간 사람의 행복을 보장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수린이 동굴에서 신비한 돌을 가지고 나왔을 때, 함께 시간을 멈추거나 시간을 멈추고 성인이 되어 오겠다는 말을 듣고는 고민에 빠진다. 자신이 겪은 멈춰버린 시간을 버틸 수 있는 건 자신뿐이기에 수린을 그 고통으로 빠트리지 않고자 자신이 죽고 싶었던 그 시간을 다시 혼자 견뎌내는 성민의 모습으로 멈춰버린 시간동안 몸만 성장한 것이 아닌 내면적인 성장도 이뤄낸 성민을 알 수 있다. 두 번의 멈춰버린 시간을 견딜 만큼 수린을 사랑한 성민이다.

 


한편, 그녀의 새아버지인 도균도 그녀를 딸로서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혼자 살아남은 도균은 수린에게 죄책감을 갖고 늘 미안한 마음으로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 그럼에도 수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면 누구보다 먼저 나서며 수린에 대한 걱정으로 많은 고민을 한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수린에게 섭섭할 만도 하지만 그럴수록 수린이 어긋나지 않게 마음을 쓰는 모습은 겉모습과 상반되어 표현하는 법을 모르는 아버지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런 그의 마음이 통했는지 마지막에 경찰 조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수린에게 라면을 끓여준 도균은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기쁜 마음을 드러내지도 표현하지도 못한 채 어쩔 줄 몰라 한다.

 

최근 <마스터>의 인터뷰 중 배우 엄지원이 강동원에게 망한 영화에 대해서 겸손하지 않다는 말로 논란이 일어나 더욱 관심이 가게 된 영화 <가려진 시간>이었다. 흥행에 대한 책임이 배우에게도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배우의 연기가 아쉬웠다거나 작품의 연계가 부족하다거나 하는 생각은 크게 들지 않았다. 다만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 있는 요소들은 상당 부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녀를 위한 소년의 희생 정신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으나 수린에게 향했던 화살처럼 공상에 빠진 소녀를 이용한 스톡홀름 증후군이나 로리타 콤플렉스로 한순간 영화의 의미를 퇴색하게 할 수 있을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본래의 의미를 생각해 자신만의 해석으로 받아들이기 나쁘지 않은 영화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