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자랑한다는 지금 세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최고의 실업률을 자랑한다. 스펙만으로는 이전 세대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 보이는 지금 세대가 직업을 갖는 데에서 무능력해진 원인은 무엇일까? 「공부중독」은 삶이 공부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말한다. 문제가 심해질수록 공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지금 세대의 모습에서 잘못된 부분이 어떤 점인지 두 담화자의 대화로 본질을 파고든다.
책에서는 최근 생긴 여러 문제의 본질적인 원인이 공부에 집중하는 사회현상 때문이라고 말한다. 집값이나 땅값의 문제가 부의 대물림을 위해 학군이 설정됨에 따라 나온 현상이라고 보는 것은 다소 과한 지적으로 볼 수 있으나 그에 따른 논리가 완전히 틀리다고도 할 수는 없다. 집값이나 땅값은 유동인구나 주변 시설물에 따라 주로 가치가 달라지지만 다른 나라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으로 인한 가치 변화가 심하다. 소위 강남 8학군에 속하기 위해 주변으로 이사하려는 수요가 강해 그에 따라 집값이 오르게 되는 것이다. 이는 나아가 부모가 재정상태보다 버거운 거주공간으로 이사해 아이의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는 명목으로 아이의 어깨에 부담을 짓누르게 만들었다.
이 문제는 청소년의 얼굴에 그늘을 가져다주고 대한민국을 OECD 자살률 1위로 만들었다. 청소년인 우리 아이들은 자신에게 나약해졌다. 이는 부족함을 크게 느끼지 않는 환경이 기인했다. 가구 당 자녀의 수가 줄어들면서 한 명을 부족함 없이 키우려는 부모의 마음이 아이가 성장하기에 좋지 않은 환경을 제공했다. 그러면서 아이의 인생에 개입하는 정도가 심해져 틀리지 않는 연습을 시키게 되었다. 문제는 틀리면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게 해 하나라도 틀리면 인생의 낙오자가 되거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게 되는 것으로 여기게 만들고 있다. 아이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고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나타난 것은 교육이 자식의 인생을 결정지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다. 교육의 혜택을 받은 중산층은 자식이 자신과 같은 부와 사회적 지위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교육뿐이라고 생각하여 아이의 교육에 집중하고 저소득층은 아이가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며 자식의 교육에 집중한다. 이는 대한민국에서 부의 대물림은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사실 실상을 들여다보면 남들이 모두 그렇게 하기 때문에 흐름에 휩쓸리는 경향이 있는 부모들이 대다수이다. 높은 교육수준을 갖는 것이 행복한 미래를 보장해줄까? 많은 부를 가져다준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중산층에선 높은 교육수준 때문에 중산층으로 살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며 저소득층에서도 높은 교육수준을 가진 사람도 상당하다. 단지 대중매체나 옆에서 들려온 이야기를 듣고 남들이 그렇게 한다고 하기에 내 아이는 흐름에서 뒤쳐지지 않게 하려고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좋은 대학은 우리 사회에서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하는 도장이 되어버렸다. 고등학교 3학년 겨울에 치르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능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가장 큰 시험이며 1년에 가장 중요한 행사이기도 하다. 19살의 나이가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인생의 전체를 판정할 시험을 보고 이를 감당하기란 쉽지 않을 나이이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우리나라의 대학교는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인 측면이 많다. 유럽의 경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진학을 결정할 때, 스스로 유예기간을 주고 여러 경험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정하고 이에 대학이 도움이 된다면 관련 전공을 정한다. 반면 우리나라 대학생은 대학교를 가기 위한 공부를 고등학교, 심지어는 중학교 때부터 시작해 수능으로 나온 점수로 그에 맞는 대학교를 고른다.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점수로 할 수 있는 공부를 정하는 것이다. 대학교에 진학해서 관련 전공이 자신의 적성에 맞으면 좋겠으나 맞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교 전공이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아 다른 전공으로 발을 돌리는 것은 빠르게 적성을 찾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 공부를 한 뒤 직업을 가지게 되면 인생의 상당 부분을 낭비하는 것이다. 이는 되돌아가기 힘든 길을 걷는 것으로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큰 낭비이다.
그럼에도 이런 대학교 타이틀을 갖기 위한 전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는 현재 자식들을 가진 부모세대가 자신들의 성공이나 타인의 성공을 미루어 짐작했을 때 대학교라는 타이틀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대학교 타이틀을 거머쥔 상태에선 개인이 노력으로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대학교는 성공으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며 갖춰야할 필수조건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그들이 처했던 환경과 기회를 생각하지 않은 채 펼치는 자기중심적인 사고이다. 그들이 사회에 나갈 때는 대학교육을 마친 고급인력의 수가 적었으며 경기 호황으로 일자리가 많아 대학교 졸업장만 있으면 원하는 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이상적인 상황이었다. 그들이 이룬 성공에 그들이 기여한 노력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운과 기회가 상당했던 프리라이딩의 성격이 강했다고 책은 언급한다. 이와 같이 현재 기성세대들이 취업난으로 허덕이는 젊은 세대에게 노오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하는 것은 자신의 과거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국가나 기업에서 청년들이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책은 청년들이 자신의 준비 부족을 탓할 것이 아니라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지 않는 정부에게 불만을 가질 것을 주장한다. 일을 배우고 전문적인 인력이 되기 위해 일자리가 필요하지만 이를 제공하지 못하는 정부는 정부의 책임을 교묘하게 청년들에게로 돌린다. 일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부를 더 해서 자격을 갖춘 후 일자리 찾기에 나서라는 말로 청년들을 현혹한다. 업무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을 쌓아야 하는 청년들은 일터가 아닌 도서관으로 가서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도 모른 채 남들이 하는 공부를 그대로 따라한다.
이는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유예시킨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에서 나아가 갖고자 하는 직업의 지식을 쌓는 단계로 전진해야하지만 준비가 안됐다는 정신승리의 최적화된 이유로 능력을 검증할 시험을 미루고 공부라는 틀 안에서 자기만족을 하는 것이 청년들의 현실이다. 청년들은 시험은 보지 않은 채 공부가 즐거운 척하며 시장으로 나갈 것을 유예한다.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서 여러 학위에 대한 공부를 하며 자기 계발이라는 그럴싸한 타이틀로 직업 시장에 뛰어드는 것을 미룬다.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을 시점을 회피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은 기존에 느끼고 있는 전능감을 잃고 싶지 않아한다. 시험을 보기 전에 자신은 항상 완벽한 상태이기 때문에 시험을 통해 자신의 현실을 깨닫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항상 완벽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한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견디며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봐야하지만 현재 청년들은 시도로 인한 실패를 두려워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견디지 못한다. 그들은 효율성을 내세우며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포기하고 있다. 사색을 하지 않고 남이 정해준 답을 곧이곧대로 정답이라고 믿는 획일화된 사고로 나아갈 위험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공부는 탐구정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공부는 앎에 대한 호기심을 동기로 한다. 이전에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알게 되는 상태로의 변화에서 느끼는 쾌감이 공부를 하는 이유가 되어야한다. 하지만 청년들은 알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서 견디지 못하며 두려움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무지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탐구적인 정신이 부족하며 호기심 또한 청년들에게서 점점 멀어져간다.
이렇게 공부가 본질을 잃어 가면 사람들은 점점 획일화되고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 이 상황은 상당히 위험하다. 우리의 유전자는 다양해 새롭거나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적합하다. 하지만 우리의 유전자가 모두 획일화되었다면 급격한 환경변화가 일어날 시, 한명이라도 대응하지 못한다면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 즉 공부의 탐구정신과 호기심을 잃은 사회는 돌아가는 주변 환경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고 사회의 존립여부 또한 보장할 수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부에 대한 개념적 정의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하는 공부는 책상에 앉아서 교과서나 참고서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작은 범위에 속한다. 하지만 우리가 책상에서 배울 수 없는 인간관계와 같은 공부에 대한 중요성이 책상에서의 공부에 뒤지지 않음을 되새겨 봐야한다. 공부를 통해서 배양할 능력을 단순히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능력으로 정의내릴 것이 아니라 삶의 다양한 측면에서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공부의 식민지화를 피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악의 순환 고리를 끊어야한다. 부모는 자식이 번듯한 직장을 가지는 것을 자랑스워할 필요가 없다. 자식이 직장을 가지는 방향에 대해 부모만의 생각을 주입하지 말고 눈치도 줘서는 안 된다. 번듯한 직장을 가진 자식을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신 스스로 건강관리를 통해 신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건재함을 자식에게 보여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이러한 관계가 개인으로서나 가족으로서나 지향점으로 삼아야할 그림일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가 해 나가야하는 공부는 결과를 외우는 공부가 아니라 과정을 만들 줄 아는 공부를 해 나가야할 것이다. 스펙 쌓기나 자격증 공부는 과정을 만드는 방법 중 극히 일부이다. 방법의 일부만을 보고 간단해 보인다는 이유로 모두가 한 가지 방법에만 몰두한다면 이에 대한 부작용은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삶이 공부의 식민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공부는 우리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가 되어야 할뿐 남들이 하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인생의 패배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사회는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갈 사회의 모습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가지고 있는 능력이 중요한 사회이다. 우리는 능력을 공부에 대한 능력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평가하는 지표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며 우리의 능력은 다양하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능력은 배양할 수 있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음을 자각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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